Y가 문을 열고 들어간 강의실은 아직도 텅 비었다.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다. 아직 수업이 시작하려면 반 시간이나 남은 것이다. 그렇지만 Y가 평소에 비해 일찍 나온 건 아니었다. Y는 1교시에 누구보다 일찍 도착한다. Y는 대학에서 좀 떨어진 지역에서 살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처럼 느긋하게 나왔다가는 아침 러시아워에 걸려 강의에 제때 도착할 수 없다....
K가 쓰던 핸드폰이 발견됐다. 중고차 매장에서 발견한 K의 차에서 발견되었고, 매장 측에서는 K와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어 일단은 보관해두고 있었다고 한다. K의 가족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의 기록을 살펴보았지만 평범한 직장 업무 대화나 동창들과 가끔 주고받은 메신저 기록 뿐이었다. 노트북과 컴퓨터는 직거래로 처분을 했는지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
"아파트에서 사람이 떨어졌대." "자살?" "아니. 그냥 떨어져 보고 싶었대." "미친 사람이네." "그러게." N은 전화의 액정을 끄고 L을 돌아보았다. 그는 막대사탕을 입에 넣은 채, 자신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액정에 시선을 박아두고 있다. 시간은 벌써 저녁 일곱 시를 향해가고 있다. 육교 위에서 본 동네는 오렌지색 노을과 밤의 어스름에 그 형태가 뭉개...
"이것 좀 봐봐." H가 Y의 눈앞에 휴대전화 액정을 들이밀며 물었다. "…워크맨?" "예쁘지? 요즘 다시 나오는 거 아니고 진짜 90년대에 나온 거야. 심지어 아직 작동 된대." "그래서?" "사도 될까?" 네가 그걸 사는 데 내가 대체 무슨 상관인데? Y는 그렇게 대꾸했지만 H는 계속해서 다른 대답을 요구했다. H는 자신이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이 있으면...
"야. 그렉." "뭐." "너 뉴욕 온 지 얼마나 됐지?" 루크는 그렉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한참 계절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센트럴 파크의 분수 앞에서 마치 드라마 <프렌즈>의 오프닝처럼 돌아다닌 후 브롱크스로 돌아가기 위해 내려온 지하철역 안이었다. 뉴욕시 소재의 한 대학에서 만난 두 사람은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나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
P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S가 이사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S는 P도 알고 지낸 지 오래된 대학 동기와 올봄 결혼을 했다. 아직 모아둔 돈이 적어 S가 살던 빌라의 투룸에서 신혼생활을 보내던 그들을 각자의 양친이 안쓰럽게 생각했던지, 양가에서 돈을 모아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의 한 도시에 집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통근 시간이 길어져서 좀 아득하긴 한데...
"C 대리님은 향수 좋아하시나 봐요." C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둘이 아니었고, 그중 대부분은 별로 좋은 의도가 아니었다. C는 거의 매일, 하루 중에도 몇 번이나 향수를 뿌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향이 아주 오랫동안 강하게 남는 퍼퓸을 즐겨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향기에 대해 한 번씩 말을 얹고는 했다. "...
K는 오랜만에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심야의 고속버스는 조용하다. 사실 고속버스라는 게 밤에 타든 낮에 타든 어지간하면 조용한 건 마찬가지지만. 그러나 캄캄하게 소등된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숨만 쉬는 소리를 들으며 가로등 불빛 조차 없는 산길을 지날 동안 K는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
D의 집은 옛날 아파트처럼 복도가 길게 이어진 아파트였다. 양 끝이 분명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D는 자신의 집 현관까지 걸어가는 복도가 마치 끝없이 이어진 것 같았다. 이대로 복도의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려나, 그런 생각도 종종 들었지만 실제로 체험해 볼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다수의 사람들이 지내는 형태의 건물이라고 해도, 남의 집 현관에 이...
더 이상 집에만 박혀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A는 대충 옷을 꺼내 입고 밖으로 나섰다. 아직은 시린 공기와 바람 때문에 좋은 날씨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갑과 휴대전화만 챙기고 나온 A는 일단 지하철역으로 가기로 정했다. 월요일 오후부터 시내로 놀러 나오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이대로 시내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2009년, 청소년기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던 그해 여름에는 오만원 지폐가 새로 나왔고, 마이클 잭슨과 두 명의 전 대통령이 죽었으며,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새로 생기기 시작했다. 21세기가 오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것만 같았다는 20세기 사람들의 기대처럼, 나는 2010년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건 순수한 의미에서의 기대는...
"속 편해서 좋겠다." 졸업 이후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모 대학 근처의 카페에서, H는 통유리 밖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바깥에는 마치 자랑처럼 과잠을 입고 길거리에서 산 듯한 에코백을 든, 그러니까 누가 봐도 신입생들처럼 보이는 한 무리가 가성비로 유명한 브랜드의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다니고 있었다. 정작 스무살의, 지긋지긋한 ...
(구) Second Ezequ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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